Friday, February 16, 2007

사면초가

진(秦)나라가 천하(天下:六國)를 통일한 뒤 진시황은 오만해져서 온갖 사치와 향락만을 즐기고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정치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살 수 없었으며 도적의 무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온 천하는 소란 속에 휩싸였다. 이때 유방(漢太祖)과 항우(項羽:楚覇王)는 서로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쳐서 항복 받았다.

그러나 유방과 항우는 진나라를 치는 데만 협력하였을 뿐 진나라가 망하자 곧 적이 되어 싸우기를 5년이나 하였다. 유방의 휘하에 있는 한(漢)나라 장수 한신(韓信)은 용병(用兵)에 능한 자로서 천하병마도원수(天下兵馬都元帥)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여러 제후국(諸侯國)의 장병들을 거느려 항우와 싸우는데 구리산(九里山) 전후좌우에 물샐틈 없이 장병들을 매복(埋伏)하고 초왕 항우를 사로잡으려 하였다.

항우는 그 힘이 능히 산이라도 뽑을 수 있는 역발산(力拔山) 만고용장(萬古勇將)으로서 한 사람이 열을 다할 수 있는 강동자제(강동자제) 8천명을 거느리고 한신이 매복한 포위망을 뚫기에 안간힘을 다하였다. 항우는 하루 동안에 한나라의 맹장(猛杖) 50여명과 대적하여 후퇴시켰으므로 한신은 쉽사리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역시, 한나라의 지장(智將)인 장량(張良)이 한신과 상의한 뒤에 계명산(鷄鳴山)에 올라가 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때는 늦은 가을, 서리는 차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고향 멀리 부모처자를 떠나와 전진(戰陣) 속에 파묻힌 강동자제(항우의 장졸)들은 찬바람 달빛 속에 고향을 그리던 중 간장이 녹을 듯 처량한 옥퉁소 소리를 들음에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복바쳐 오른다. 그들(江東子弟八千人)은 완전히 싸울 뜻을 잃고 한 사람 한 사람 진(진)을 벗어나와 도망쳐서 강동땅 그리운 고향을 달아나고 말았다.이때 한나라에서는 그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일부러 진문(陣門)을 열어 주었다. 이런 일이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항우는 그날밤에도 총희(寵姬) 우미인(虞美人)과 함께 장중(帳中)에서 자고 있다가 소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아, 이 소리는···."온 군중이 모두 초나라 노래(노래)를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초왕은 대경실색하며,"앗!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이 어이 초나라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은고,"하고 길게 탄식하였다.그 뒤 초패왕 항우(楚覇王項羽)는 간신히 한나라 진중에서 벗어나 도망치다가 강동을 건너갈 면목이 없다 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이로써 초나라는 망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고사를 인용하여 세상 사람들은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을 잘 쓰고 있는데 그 뜻은 `사방 팔방을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오직 적(敵)뿐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서 도와 줄 사람이 없이 고립(孤立)된 상황을 일컬어 `사면초가`라 한다.

( 徐京保, ≪古語, 格言과 傳設, 風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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