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07, 2007

한국 번역, 오역시비에 그쳐…상투적 번역이 더 문제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가 지난 3일 고려대에서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창립 학술대회를 열었다. 번역에 관한 이론과 현장경험이 만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지난달 27일 학술대회에 앞서 학회장인 황현산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사진)를 만나 우리나라 번역의 문제점 및 번역비평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황 회장은 지난해 9월 학회 창립 이후 초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번역을 이론화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학회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일반적으로 번역을 ‘우리말로 돼 있지 않은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꿔 소개하는 작업’ 정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두 언어에 관해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이뤄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나 소설 같은 언어창작물 보다 오히려 번역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요. 언어의 모든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인문학의 모든 주제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번역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은 번역비평의 한계로 이어진다. 황 회장은 ‘번역담론’의 문제를 꼬집었다. “한국의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통해 탐구하고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죠. 번역은 언어를 분석하기에 굉장히 좋은 재료인데, 아직 우리나라 번역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 했다고 봅니다.”


본지가 지난 2005년부터 연재한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를 언급하자 황 회장은 칭찬과 함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번역의 중요성은 물론, 번역을 객관화하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데 교수신문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연재물을 보면서 “오역이 많다, 잘 읽힌다” 정도의 논의를 넘어 체계적인 번역 담론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오역시비에 앞서 우리나라 번역작업이 안고 있는 근본장애로 ‘상투적인 번역’을 지적했다. “우리말로 쓴 것보다 더 우리말 같은 번역들”은 번역의 중요한 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상투적이지 않다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소설이나 시에선 낯선 말도 용납하면서 유독 번역에서 낯선 용어가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상투적인 번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기 위해 학회는 갈 길이 멀다. 황 회장도 “공개적, 객관적으로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번역이론가와 현장번역가가 만나 번역에 관한 인식을 같이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학술회의, 국제학술세미나, 월례발표회 등을 통해 번역에 관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성찰해 나가겠다”고 학회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Thursday, March 01, 2007

외화번역 국내 1인자 스크린 뒤 숨은 광대-이미도



영화 번역에 관한 한 국내 1인자. 한국외국어대에서 스웨덴어 전공. 공군 장교 출신에 주민등록번호 1자로 시작하는 엄연한 남자인데, 이름 가운데 아름다울 ‘미(美)’자가 있다는 이유로 여자로 오인받고는 한다. 좌우명은 영화인답게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의 명언.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영화와 스키·등산·축구 등으로 현재를 즐기느라 아직 미혼.이미도를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이미도가 누구야”라는 말을 꽤 들었다. 이런! 그래서 ‘번역-이미도’ 있잖아, 했더니 그제서야 ‘아~~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설명해도 “모르겠다”는 ‘우매한(?) 민중’도 있다.“그게, 거시기 ‘이미레’의 언니냐?”이쯤 되면 너무한 거다. “문화생활 좀 하시라”고 면박(?)을 줬다. 어지간한 영화 몇 편만 보았다면 충분히 기억함직한 이름 아닌가? 영화가 막 끝난 극장. 의자 깊숙이 몸을 맡기고 있자면 ‘번역 이미도’가 화면에 스친다. 길어야 1초 남짓. 독특한 이름 때문인지, 영화가 주는 여운이 길어서인지 그의 존재감은 꽤 묵직하다. 1990년대부터 히트한 어지간한 외화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가장 최근의 <뮌헨>을 비롯해 <아마겟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 <아메리칸 뷰티> 등이 대표작이다. 매년 한두 편씩 수입되는 애니메이션 또한 모두 그가 번역한 것이다.‘출판사 사장님’으로 변신‘외화 흥행 보증수표’인 이미도가 최근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개사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굳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선택한 것은 그가 직접 출판사를 차렸기 때문이다. 외화 번역가에서 ‘출판사 사장님’으로 변신(혹은 외도?)한 그를 만나러 간다.
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첫째, 그는 절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둘째, 미혼이다. 셋째, 집이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쓰레기장’ 사촌뻘쯤 된다. 그리고 전화받는 태도로 미뤄 대충 짐작하건대,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장난기가 뚝뚝 묻어났다.괜찮은 시간을 물었더니 “아무 때나 다 괜찮다”고 한다. “다음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이틀 몽땅 스케줄을 비워 놓겠단다. 예스!“저는 혼자 작업하니 누구랑 같이 밥 먹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우리 맛있는 것 먹으면서 얘기해요.”그의 집이 역삼동 근처라고 하기에, 그 근처 한정식집을 예약하고 문자로 시간과 장소를 보냈다. 곧바로 문자가 휙 날아들었다.“넵! 땡썰랏!”(‘Thank’s a lot’을 이렇게 표현했다.)47세 ‘아저씨’의 언어 선택은 재기발랄 모드. 재미난 사람이라는 예감이었다. 이미 봄인 것 같은 2월 첫째 주 수요일, 한정식집 ‘바우고개’에서 그를 기다렸다.약속시간에 꼭 맞춰 ‘히죽히죽’ 웃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개 인터뷰를 하면 최선을 다해 차려입고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 작자 대담하다. 아니, 다르다. 부스스한 곱슬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약간 늘어져 보이는 면 티셔츠와 빛 바랜 진 바지를 입고 떡하니 나타났다.기자, 괜히 차려입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신발 벗는 데 하도 오래 걸리기에 슬쩍 봤더니 등산화다. 끈을 다 푸는 오랜 ‘작업’ 끝에 그가 방 안으로 올라섰다. 한 손에는 교보문고 쇼핑백, 다른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서.그의 부산한 등장과 함께 방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바뀌었다. 가야금 소리가 고요히 흐르던 온돌방은 시끌벅적한 ‘주막’이 됐다.“스타벅스에서 오는 길이에요. 마시다 남아서 ‘투고(to go)’해 달라고 했죠. 만약 여러 명이 ‘투고’해 달라고 했으면 ‘집단 투고’네요. 하하하!”

그는 순간순간 언어를 가지고 놀았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엉뚱하면서 익살맞은 ‘시트콤 속 캐릭터’랄까? 그만큼 ‘즐거운’ 사람이었다.며칠 전 가수 김C의 <멋진 아침>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했는데, 앞으로 고정출연하기로 했다며 약간 들떠 있는 모습이다. <올드 앤 뉴>라는 꼭지에서 옛날 영화와 앞으로 개봉할 영화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는 개념이란다.“어디에 고정적으로 얽매이는 것을 정말 못하는데, 김C가 매력 있더라고요. 뭐랄까, 진솔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같이 축구도 해 볼 생각이에요.”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전날 중계방송 결과를 두고 “이천수가 일을 냈다”며 “정말 멋있는 골”이라고 한참 칭찬했다.“그 친구가 오른발로 프리킥을 정말 잘해요. 그리스가 얼마나 센 팀인지 아시죠?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팀인데. 제가 축구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공 안 차본 지 오래됐는데 한창때는 잘한다는 소리 들었어요….”(웃음)축구뿐 아니라 스키도 전문가 수준이다. 한국산악스키회 회원으로 활동한 지 어언 20년.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해외 스키장을 순례하며 산악스키를 즐긴다. 운동이라면 뭐든지 자신 있다는 그에게 골프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골프에 빠져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빠져나온 상태라고.오해 하나: “왜 이미도 혼자 독식하나?”골프는 주로 영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학교 선후배, 거래처 사람들, 또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귐을 나눈 사람들, 특히 스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쳤다. 혼자 일하다 보면 외롭고 적적할 때가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어디를 가나 친구”란다.“스타벅스를 가면 직원들이 다 친구고, TGIF(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식사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 직원들도 다 친구고, 가끔 바에 가서 앉아 있으면 바텐더가 친구죠.”뭐니뭐니 해도 친구가 가장 많은 곳은 영화 속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굿 윌 헌팅> <아메리칸 뷰티> <인생은 아름다워> 등 영화 속 모든 캐릭터와 친구가 된다.“<굿 윌 헌팅>의 주인공이었던 맷 데이먼과 저는 이렇게 나이 들어가지만, 맷 데이먼이 연기했던 그 주인공은 제 마음속에서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잖아요? 그 수많은 인물이 전부 제 친구들이에요.”(웃음)아침 7시면 일어나 신문 3개를 들고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한다.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각종 지식을 얻는다. 호기심이 많다 보니 무엇을 해도 재미있다.“영화에 소개되는 내용의 범위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중 하나의 분야를 파고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친숙할 수 있게끔 알아둬야 해요.”신문을 읽은 뒤 그는 스타벅스에서 번역이나 집필작업을 한다. 다른 커피숍과 달리 인터넷 선을 꽂을 데가 많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업장에서도 그가 나타나면 일할 수 있게끔 배려해 준다고.“한 번 앉으면 행여 누가 앉을까봐 꿋꿋이 앉아 있어요. 화장실 갈 때는 컴퓨터만 빼 가지고 가고요.”(웃음)하루종일 죽치고 있으면서 커피는 몇 잔이나 마시는가 했더니 고작 두 잔이다. “너무한 것 같다”고 하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한다.“그래서 제가 스타벅스 PR 많이 하잖아요. 여름에는 냉방 잘되고, 겨울에는 난방 잘되고, 찾기 쉬운 위치에 있으니 퀵 서비스받기도 쉽고, 인터뷰할 때 기자님들 찾아오시기도 쉽고, 편하고…. 또 책을 쓰거나 기획 단계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야 하는데, 언제나 물어볼 대상이 있잖아요? 해운대에 가끔 가는데, 거기서도 스타벅스에서 일해요.”모 언론을 통해 그가 스타벅스 역삼점에서 일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곳에는 그를 찾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번역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직원들은 제가 불편해 할까봐 제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도 안 불편해요. 실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만나면 똑 부러지게 얘기해 주죠. 어디서 교육받으면 좋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데요?“제 경우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방송국에서 자체 운영하는 영상교육원이 있어요. 주기적으로 분야별로 모집하죠. 그중 ‘영상번역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더빙 번역(성우들이 대사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다 보면 방송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고, 경력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면 영화사에 ‘노크’하고. 그런 것조차 모르시고 시작하려면 힘들죠.”― 그렇게 길이 열려 있는데 왜 미도 씨밖에 안 보이죠?“없지 않아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죠. 한 10명쯤 되는데…. 1년에 150편(영어권) 정도 들어오니 한 명당 15편 정도 한다고 보시면 돼요.”― 항간에는 미도 씨 혼자 독식한다는 비판도 있던데요?“그러게요. 본의 아니게 오해받는 것이 ‘이미도’가 회사냐고….(웃음) 왜 70~80%를 혼자 하느냐고 하는데, 사실은 거기서 0을 뺀 7~8%예요. 할리우드 영화만 보면 제가 하는 것이 1년에 15편에서 20편 정도거든요.
제가 초기부터 시작한데다 번역 실명제를 하고, 또 제가 번역한 영화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만큼 관객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죠. 제 독특한 이름도 한몫했을 거고.”― ‘이 바닥’에서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어휴, 경쟁하면서 살 겨를이 어디 있어요? 번역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미생활 하고 즐겨야지…. 재미있게 살 시간도 부족한데요. 특정 번역가를 경쟁자로 염두에 두고 일하면 아마 지칠 걸요? 각자 번역하는 스타일이 있고, 또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래선이 있어요. 저는 영화가 아무리 탐나도 저와 연결된 회사들 밖으로는 눈길을 안 줘요. 그래야 저와 연결된 회사와의 신뢰가 이어질 수 있거든요.”오해 둘: “이미도가 재벌이라며?”― 외화 흥행 순위 1위부터 20위까지는 이미도 씨가 번역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나요?“그런 것은 아녜요. 번역하고 보니 꼬박꼬박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더라고요. 아, 이런 것은 있죠. 여러 편 들어오면 이것을 하기 위해 다른 것을 피해갈 수밖에 없는 거요. 거래선이 닿아 있는 곳은 먼저 챙겨야 하니까요.”그는 한 번 계약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월트디즈니와 CJ엔터테인먼트는 번역길의 오랜 동반자다.― 현재 번역 중인 영화는 뭔가요?“지금은 <슈렉 3>를 준비 중이에요. 아직 준비 중이니 기대만 하고 있죠. 이번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여자 파트너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설레죠.”― 그런 정보는 영화사에서 얻나요?“네, 영화사에서 받기도 하고, 온라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외국 영화 사이트가 많이 있어요.”― 번역하기 전에 그 분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나요?“그럼요. <뷰티풀 마인드>의 경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이야기잖아요? 그 인물에 대한 기본 정보를 모르면 해석적 번역에 그칠 수 있어 책도 사 보고, 자료도 찾아봐요.”번역에 선행하는 작업으로서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는 재미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 그는 토요일이면 늘 교보문고로 향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오는 각 신문의 북섹션에서 관심 있는 책을 표시해 뒀다 사서 읽는다.본 작업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초 다툼이다.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주일, 길어야 열흘 정도. 흔히 번역가들은 영화를 돌려보면서 번역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 영화는 한 번밖에 볼 수 없단다. 영화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영화사에서 한 번 볼 때 소리를 녹음해 번역한다고. 그만큼 영화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번역한 원고를 넘겼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 심의받고, 수입해도 좋다는 판정을 받으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이 등급을 정해 준다. 그 뒤로 두 달 정도의 영화 마케팅 기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수정하고 감수하는 작업을 거친다. 따지고 보면 번역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보다 그 다음 단계에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자막을 넣고 나면 언론 시사회, 일반 시사회 등 시사회를 다양하게 하는데, 이미도는 항상 그 현장과 함께한다. 거기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아, 저곳은 다르게 표현하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마음에 들도록 고치고 또 다듬는다. 그는 프로다.― 대개 영화 한 편을 번역하면 얼마나 받나요?“600만 원도 받고 500만 원도 받고, 대중없어요. 영화 스케일이나 영화사에 따라 달라져요. 하한선 200만 원도 받아봤어요. 그런데 사실 영화를 통해 제가 만끽하는 재미나 즐거움을 감안하면 번역료가 높고 낮은 것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즐겁게 일하면 지치지도, 스트레스도 안 받아요.”― 혹자는 이미도 씨가 재벌 됐을 거라는 말도 하던데요?(웃음)“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솔직히 번역계 여건이 열악하거든요. 일단 ‘번역’이라고 하면 홀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과거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모든 출판사가 달려들어 출판 과열 경쟁을 벌였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좋은 번역가를 키우는 데는 소홀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목말라 하면서도 그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벌었는지는 객관적·주관적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그는 얼마 벌었느냐는 질문을 뭉뚱그리며 번역환경이 열악한 것에 대해 한참 동안 열을 올렸다. 번역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꾸 하향조정하며 ‘제살깎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니까 실력 있는 분들이 진출하겠어요? 이 악물고 해보겠다고 입문한 사람들도 지쳐 손을 놓는 실정이에요. 더 좋은 번역이 나오기 힘들죠. 저는 번역이 나름대로 대우를 받는 데 일정 부분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입문했을 때 편당 60만 원이었거든요.”― DVD나 비디오 번역도 함께 맡나요?“아뇨. 영화사와 비디오·DVD 회사가 같을 경우에는 제 대본을 가져다 썼을지 모르지만, 그쪽은 그쪽에만 전문으로 종사하는 분이 계신 걸요.”오해 셋: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거야?”― 이미도 씨가 번역한 것을 DVD로 봤을 때 번역이 어떻던가요?“어찌 보면 DVD 자막 내용이 더 충실하고 상세할 수 있어요. 훨씬 더 많은 자막이 들어가거든요. 극장에서는 ‘돌려보기’가 안 되니 최대한 짧게 의미를 전달해야 해요. 반복적으로 대사를 놓치면 영화 보는 재미가 떨어지잖아요?”그래서 미국 영화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대본 자체는 전체 대사의 약 80% 정도밖에 안 담겨 있다. “그 범위 내에서 의미와 재미를 살려 주기 바란다”는 의미다.
이것은 한국영화가 외국으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혹시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영화 번역작업은 안 하시나요?“제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것은 할 수 있어요. 프랑스에 수출됐던 <유리>라는 영화와 <개 같은 날의 오후>를 했어요. 그 언어권의 원어민과 공동작업을 했죠. 그 문화권·언어권 사람들이 영화를 올곧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으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왜 영화 속 욕은 죄다 “오, 맙소사” “빌어먹을”인가요?“심의 때문이에요. 관객을 한 명이라도 늘려 보고 싶은 심정 아세요? 미국영화에서는 성에 관한 농담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 같이 보는 영화관에서 분위기가 좀 싸할 거예요. <굿 윌 헌팅>이 대표적인데, 내용이 정말 좋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게 R등급(보호자 없는 17세 이하 관람불가)을 받았거든요. 청소년들이 봐도 참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불가피하게 오역한 경우가 있었죠.”

― 그래서 해적판 자막이 재밌다고들 하는군요?“그럴 수밖에 없어요. 마치 벽에 낙서해 놓은 것같이 여과되지 않은 말이니까요. 낯뜨거우면서도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낄 수 있죠. 그런 자막을 극장 앞에서 보면 불쾌감이 느껴질걸요?”이쯤 해서 물었다. 중국영화인 <연인>, 일본 애니메이션인 <샘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탈리아어인 <인생은 아름다워> 등과 같은 영화 번역은 어떻게 한 것인지….―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건가요?“하하, 저는 그쪽 언어들 하나도 몰라요. 항상 공동작업을 했고, 항상 자막에 그분들 이름과 함께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기억을 못해서 그렇죠. 제가 영어 대본을 갖고 번역할 경우 중역을 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연인>에서 ‘20만 대군’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어 대본에는 ‘many soldiers’라고 나와요. 만약 중국어를 듣는 사람들은 ‘아이~ 씨, 20만인데’라고 하겠죠. 그걸 저 혼자 번역하면 ‘갓 쓰고 할리데이비슨 타는 꼴’이죠.”세르반테스가 말했다. “번역은 뒤집어놓은 양탄자와 같다”고. 멀리서 보면 앞면이나 뒷면이나 화려하고 멋있지만 다가가면 질감이나 색상 모두 다르다.
그래서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지 않는가?“이렇게 감히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번역이 인간에게 주는 형벌로서의 직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어요. 번역이 갖고 있는 한계를 알기 때문에, 완전한 번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그 완전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만, 번역을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다가가면 다가설수록 번역이 두려워졌다. 외줄타기를 자꾸 하다 보니 하나라도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더 두려웠다고. ‘쟁이’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뭔지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창작 갈증, 번역 염증문득 궁금했다. 영화관에서 ‘번역-이미도’라는 자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어휴, 저는 도저히 볼 수 없어요. 언제쯤 제 이름이 나올지 알잖아요? 그때쯤 되면 고개가 ‘이렇~게’ 돼요.”그는 자신의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 옆으로 돌리는 시늉을 했다. 10년 넘게 번역일을 하면서 그는 한 번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번역가는 병풍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주인공은 항상 따로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미도가 회사 이름이라는 둥, 여자라는 둥 오해를 사기도 했다.늘 창작 욕구에 시달렸다. 영화 포스터 카피와 광고 카피를 썼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창작에 대한 갈증이 무르익기도 했고…. 번역에 대한 염증도 있었어요. 그만두고 싶었으니까….”잘나가는 번역가의 입에서 “그만두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짠하다. 저마다 남모를 고민을 안고 사는구나 싶어서.“시달림…. 스케줄에 시달렸고,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없고 담아낼 수 없다는 묘한 죄책감 같은 거…. 번역으로 계속 갈 수 있겠지만, 정말 번역으로만 내 인생을 끝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어요. 이것은 ‘대리인생’이잖아요. 물론 재미있고 만족스러웠지만. 그러면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KBS <대한민국 1교시>에 출연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와 당시 이지영의 <굿모닝 팝스>에서 ‘이미도의 Made in Hollywood’를 담당하면서 <이미도의 등푸른 활어영어>를 구상했다.예전에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영혜 사장이 관심을 갖고 “책 한번 써 보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2004년 봄, 기획안을 들고 이영혜 사장을 찾아갔고, 2004년 11월 책이 나왔다. 원고지 1,000장을 단 15일 만에 끝냈다.“아침부터 스타벅스에 딱 자리 잡고 앉아서 ‘선생님, 오늘 100매 진도!’ ‘오늘 200매 진도!’ ‘아~ 요청하신 원고량을 넘었는데 어떡하죠?’ 이렇게 써댔어요.”쉽게 5만 권이 팔려나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박’이었다. 그즈음 또 다른 책의 기획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아예 ‘물고기도서관(FISH)’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패션의 F와 아이디어의 I와 스토리의 S, 그리고 감동을 준다는 ‘Heart’에서 H를 땄어요.”농담 삼아 스스로 ‘대표이사 사원’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책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요즘에는 최근 펴낸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개사전>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 됐다. 책이 나온 지 2주 정도 됐는데 현재 교보문고 어학부문 6위에 올라 있단다. 이쯤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사재기 좀 하지 맙시다. 공정한 게임을 하자고요.”‘초짜 1인 출판사 사장’의 볼멘 목소리다. 확인은 안 되겠지만 딱 보면 사재기인지 아닌지 알겠다고.“
이번 여름 즈음에 에세이가 나올 것 같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보고 싶은 책도 있어요.”― 예전에 시나리오도 썼다면서요?“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제가 책 쓴다고 했더니 시나리오 쓰는 줄 아시더라고요. <텔미썸씽>이 나오기 전에 습작 수준으로 한 번 써본 적이 있는데, 내용이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냥 묵혔고, ‘트리트먼트’와 ‘시놉시스’ 같은 것들은 의견을 낸 적이 좀 있어요.”― 한국영화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그럼요. 많이 봐요. 최근 <미녀는 괴로워>를 봤어요. 트렌드를 잘 잡은 것 같더라고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울었어요.”― 출판 현장보다 영화 현장이 더 친숙할 것 같은데….“그렇죠. 그래서 ‘물고기도서관’ 등록할 때 출판 외 영화 쪽으로도 범위를 넓게 해 놨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되면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을 보는 눈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1인 다역, 딱 체질이야!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방송 출연 요청과 대학·기업 등의 강연 요청이 밀려든다. 하지만 고정적으로 묶이는 것을 싫어하는 이 남자, 번번이 정중하게 거절한다.
번역은 순발력과 기동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가 손에 떨어지는 순간 투신해야 하는 이유에서다.대신 특강 형식의 강의는 기쁜 마음으로 간다. 특히 지방 강연일 경우 소풍 가는 기분이란다. 진짜 신나는 얼굴이다. 표정이 살아 있다. 말발도 세고 ‘비주얼’도 훌륭하다.― 말을 잘해서 강의나 방송 체질일 것 같네요.“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잘한다기보다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어요.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책을 보니 이금희 씨가 감수를 맡았던데요. 친분이 있나 봐요?“어휴, 저 그것 때문에 (이금희 씨한테) 무지 혼났어요. 제 책이 대화체 형식으로 돼 있기 때문에 턱턱 걸리는 게 있으면 눈여겨봐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의견을 내주시니 너무 고마워 이름을 올렸는데, 자기가 원고나 책을 감수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면서…. 친분이 있는데 그로 인해 서먹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죄송하지만 고마운 마음이야 어쩌겠어요?”― 포스터 카피 쓰기, 영화 제작, 번역, 출판, 강의…. 이 중 제일 재미있는 것은 뭐예요?“책 쓰고, 책 만드는 거요. 책잡히기 싫으니까.”(웃음)수시로 언어로 장난치는 그는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방송 프로그램 중에 ‘돌발질문’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새로운 10만 원권에 어떤 그림을 넣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산삼이라고 했어요.”(웃음)아니, 10만 원짜리에 웬 뚱딴지같은 산삼인가 했더니 10만 원의 애칭을 ‘심마니’라고 부른다면 심마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산삼 아니겠느냐는 것. 듣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말이 된다’ 싶다.
천부적 언어 감각은 미군부대 통역병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농고를 중퇴한 아버지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하던 시절 영어와 스페인어를 독학했다.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항상 책을 가까이했던 아버지는 언어적 감각과 문학적 감각을 두루 갖춘 분이었다고.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미나리>라는 카바레 간판이 보이면 “<미나리에서 만나리>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부대에서 나온 뒤로는 외제 카메라를 사다 파는 일을 했다. 압류한 밀수품이 공매에 부쳐질 때 사 오는 일이었는데, 상업이 적성에 안 맞았는지 신경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다 그만두셨다. 젊은 시절부터 이민을 준비했던 부모님은 호주에 살고 계신다. 여기서 이미도의 입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우리집의 호주(호주)니까 호주에 계시죠.”(웃음)‘미도’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길을 걸으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었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가라’는 의미도 더불어 담았다. 3남1녀인데 다른 형제들 이름은 미국과 아무 상관이 없단다.“제가 첫 ‘빠따’가 되는 바람에….(웃음) 혹시 <올드보이> 보셨어요? 거기 여주인공 이름이 ‘미도’잖아요? 제가 빌려준 이름이에요.”― 분위기 묘한 캐릭터였죠?(웃음) 중성적이기도 하고….“맞아요. 시나리오 마지막 단계에서 박찬욱 감독님이 여주인공이 중성적 이미지라고 하면서 ‘미도’라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그러면서 저를 떠올리셨대요. 마침 그 영화 프로듀서가 저를 아는 분이었어요. 저는 물론 ‘오케이’였죠. ‘미도가 나만 있나? 대신 무대인사할 때 같이 좀 올라가자’고 했는데 그냥 농담처럼 끝났어요. 되게 재미있는 깜짝 이벤트가 될 것 같았는데….”
― 실제로 중성적 캐릭터인가요?“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중성적이라기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촘촘히 얽혀 있는 것 같은데요?“아, 맞아요. 정확히 보셨어요. 제가 축구 같은 것을 할 때는 굉장히 저돌적이에요. 공을 차고 나면 공은 안 들어가도 사람은 골대 안에 들어가 있거든요.(웃음) 공군 장교로 근무할 때도 동기들이 그랬어요. 만약 말뚝 박는 동기가 나온다면 유일하게 미도일 거라고. 그런데 지금 하는 작업들은 상당히 감성적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혈액형을 단번에 못 알아맞혀요. 처음에는 O형으로 시작했다 AB형, 그 다음에는 B형….”실은 A형이다. “추위, 더위는 안 타도 부끄러움은 좀 탄다”고 수줍게 웃는다.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개구쟁이였다. 풀어놓은 나귀처럼.어려서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영화관은 그에게 꿈과 같은 놀이터였다.“그때는 정이 넘쳤어요. ‘기도’라는 분한테 ‘아저씨, 한 번만 보여주세요’ 하면 그냥 넣어 주셨어요. 정이 넘쳤죠. 생판 모르는 아저씨 손을 잡고 따라가기도 하고…. 본 영화 또 보고 <대부> 같은 영화는 개봉한 날 하루 종일 봤어요.”<시네마천국>의 토토한 번은 극장 개구멍으로 들어가다 뒷간에 빠지는 바람에 다리가 핫도그처럼 반죽된 기억도 있다.―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생각나요.“하하, 그런 면이 있죠. ‘할리우드 키드’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 많고. 어릴 적에는 눈이 지금보다 두 배로 컸거든요. 가끔 제 스스로도 ‘저-기’ 파키스탄 쪽이라고 하기도 하고, ‘조금 탈색된 인도인’쯤으로 소개해요.”영화광이었던 ‘토토’. 정작 대학 때는 스웨덴어를 전공했다. 약간 뜬금없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아버지가 ‘너 영어 못하니?’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스웨덴이 복지가 잘돼 있으니 이민을 생각해 보자고요. 그래서 배우게 됐는데, 정작 스웨덴은 접으시고 미국 쪽으로 바꿨다 캐나다로 쭉 준비하시다 결국은 호주로 가셨죠.”
―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공부했던데요?“당시 광고 쪽이 굉장히 유망한 직업이었어요. 시장이 점점 커지니까요. 그런데 원래 1차적 목적이 이민이었기 때문에 끝마치지는 못했어요. 그때 공부했던 것이 영화 일 하면서 카피 쓰는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영화 예고편 같은 경우는 카피라이터 감각을 필요로 하거든요.”― 어떤 카피들을 썼죠?“<아름다운 비행>이라는 영화에서는 ‘때때로 사랑은 기적처럼 아름다운 배경이며 용기 있는 모험입니다’라고 썼고, <굿 윌 헌팅>은 ‘그의 인생, 처음 등대를 만난다’ 같은 것이 있어요. 그 밖에도 <더 록>의 ‘전국 극장가 초토화 준비 완료’, <진주만>의 ‘전 세계가 숨죽여 기다렸던 사상 최대 전투 액션 블록버스터’, <아마겟돈>의 ‘누가 그들의 명성에 도전할 것인가’ 등이 그의 카피다.― 영상 번역은 ‘얼떨결에’ 시작했다면서요?“아는 형이 미국에서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판권을 따서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토스’받아 영화 소개를 맡았죠. 보도자료도 만들고 마케팅도 하고. 그러다 형이 ‘언어도 되는데 직접 번역해 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한번 해 볼까 해서 선배들이 했던 대본을 구해 글자 수 맞추는 것부터 익혔다. 순전히 독학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란다. 영화를 제일 먼저 보고, 항상 새로운 영화를 보니 매너리즘에 안 빠지고. 영화 속 캐릭터와 친구도 되고. 수많은 영화 대사 중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브루스 올마이티>에 나오는 대사다.“지역방송 리포터인 짐 캐리가 앵커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데, 그 화살을 창조주한테 돌리잖아요? 그때 짐 캐리가 ‘왜 나한테는 기적이 안 일어나느냐’고 하거든요. 그때 창조주 모건 프리먼이 그러죠. ‘You wanna see a miracle? Be the miracle!(기적을 보고 싶나? 스스로 노력해서 달라지게. 그게 기적이야!)” 스스로 노력해서 이루라는 것이죠.”― 저는 <굿 윌 헌팅>의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를 가장 좋아해요.“아…. 이번 여름에 내려는 에세이 제목으로 쓸까 생각 중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다 아픔이 있어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말 못하는 일들을 안고 살죠. 그럴 때 누군가가 ‘너의 잘못이 아냐’ 하고 위로해 주고 다가온다는 것처럼 따뜻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대사에 공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탠드 바이 미>를 이야기한다. 원작인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첫 문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단다.“가장 고백하기 힘든 사연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The most important things are the hardest things to say).”이 말이 암시하듯 네 소년이 비밀처럼 간직했던 사연들이 그들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성장영화다. 그는 아름다운 ‘길’이 나오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단다. 길에서 시작해서 길로 끝난다.“가장 말하기 힘든 사연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 살면서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그에게는 첫사랑이 그렇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이니, 그는 스물여섯, 그녀는 스물네 살이었다. 결혼을 마음먹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었다.“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야 만날 수 있었어요. 주말마다 쇼핑하러 마트에 갔는데, 그 사람이 부모님 슈퍼마켓의 일을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들어 슈퍼마켓 명함을 들고 나와 연락했어요.”보통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할 쇼핑이었지만 매주 쇼핑을 갔다. 하지만 워낙 교포사회가 좁은데다 부모님이 항상 옆에 계셔서 편지로밖에 연락하지 못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밖에서 데이트했던 기억이 없다고. “두어 달 정도 됐을 때 집에 연락을 했어요. 혹시 캐나다 가실 때 들렀다 가시면 안 되겠느냐고요. 양쪽 부모님 상견례를 했는데 서로 대화가 잘 안 풀렸나 봐요. 그분과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락이 끊어졌죠. 그 뒤로 몇 번 연락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행복하셨으면 해요.”― 다시 만날 생각이 있나요?“얼추 20년이 됐네요. 만나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결혼하셔서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괜히 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 우연히 마주쳤는데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농담처럼 그러죠. 에 의뢰해 보라고. 그냥 씽긋 웃고 말아요.”문득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이 떠올랐다. 살면서 아사코와 세 번을 마주치는데 세 번째 만남 뒤에 생각한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피천득 시인이 아사코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심정이 그와 같은 것이 아닐는지.“한번 수소문해서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 해 본 적 있어요.”언어를 가지고 노는 마법사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 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 잠시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마침 후식까지 끝낸 참이어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정신없기로 소문난 그의 집이 다음 행선지다. “신발 안 벗어도 된다”는 그의 말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대문을 여는 순간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방바닥이 아예 보이지 않는데다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아예 없다. 방바닥부터 약 30cm는 족히 쌓인 신문과 잡지, 쓰레기 등으로 방바닥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밖에 글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표현력의 한계에 부닥쳤다.침대방도 딱 그가 누울 만큼만 빼고는 어디 편안히 앉을 구석도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DVD와 책이 온 사방에 널려 있다. 꽤 커다란 냉장고가 있기에 ‘그래도 밥은 해 먹나 보다’ 했더니 “언제 열어 봤는지 기억이 없다”면서 “꽉 채워져 있기는 한데…”라고 말끝을 흐린다.이쯤 되면 정말이지 ‘진정한 폐인’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일에서는 결벽증이라 할 만큼 치밀함을 보인다. 극과 극이 혼재하는 이 사내, 폐인이기 전에 ‘기인’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그는 <돈 후앙>을 틀었다. 거기에 나오는 조니 뎁이 자신을 닮았다고 ‘주장’하며….
사진촬영 중에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틈만 나면 장난치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때로 시무룩한 척 입을 삐죽 내밀기도 했다.집에서의 촬영을 끝내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친구 대하듯 그를 반긴다. 그가 커피를 쐈다. “세상에 별별 다방 다 있지만, 그중에서도 ‘별다방’을 제일 좋아한다”는 그는 집보다 스타벅스에서 더 편안해 보였다.

가장 말하기 힘든 사연목 좋은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그 자리가 비자마자 꿰차고 앉아 기자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태진아의 <옥경이> ‘가사 원칙’에 입각해 상대를 파악해 가는 재주가 탁월했다. 영화를 보면 유난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그가 딱 그랬다.“결국 인생은 혼자가 아녜요. 상대가 연인이 됐건, 선생님이건, 제자건, 상사건 자기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가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잖아요? 저도 남은 생을 그렇게 좋은 사람들, 이제껏 맺어온 인연을 소중히 하며 살고 싶어요.”어느새 해가 졌다. 무슨 일이건 딱 저녁식사 전까지만 하는 것이 원칙인 이미도. 종일 시간을 빼앗은 것 같은 미안함을 전했더니 “오늘은 기자님을 위해 비워둔 날”이라며 저녁 식사도 하잖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 사람과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면서.“
저녁식사 이후 시간을 고스란히 즐겨야 그 다음날 활기차게 일어나서 일하죠. 휘영청 밝은 시간에만 일하고, 휘영청 달이 뜨면 술 먹고 휘청휘청…. 씨익~.”그의 단골이라는 강남역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닭튀김·골뱅이·해물탕을 안주 겸 식사 삼아 먹어치웠다. “맥주는 무한정 마신다”는 그는 겁나게 빠른 속도로 맥주잔을 비워냈다. 단골집이라더니, 푸근하게 생긴 사장님이 연어 뱃살을 서비스로 내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문득, 저렇게 살고팠다. 달이 휘영청 떴다.호기심 많고, 무슨 일이든 재미있어야 하고, 항상 길 떠나는 은발 소년 이미도. 그는 다시 또 보고 싶은 영화처럼 그렇게 남았다.

Friday, February 23, 2007

TV, Internet games produce addict dads



TV, Internet games produce addict dads
Lack of communication may be ‘protective shell,’ say experts








A 42-year-old self-employed man, identified by his surname, Lee, is a member of the so-called ‘remote control tribe.’ He eats, drinks, sleeps, and even brushes his teeth in front of his television set. When she caught his five-year-old daughter imitating her father’s actions one day, Lee’s 39-year-old wife, Jo, was stunned.

With her husband acting as a bad influence on her daughter - not to mention the toll it had taken on her married life - Jo asked for a divorce. Shocked into reaction, Lee sought counseling; the marriage was saved. Lee’s television addiction has since been treated by mental health professionals.


A 42-year-old housewife, identified by her surname, Kim, is currently fighting a similar battle with her husband, who practically lived in front of the television set. As the husband shouted at the children when they disturbed him from watching television, she threw their television in the garbage. But her husband is still watching television via his mobile phone.


The Internet is another draw for such entertainment-addictive personalities, giving birth to a ‘cyber cocoon tribe’ of husbands. A 38-year-old officer worker, identified as Mr. Kim, is an online game addict, his cyber game peers mostly teenagers. The teenagers are surprised whenever they learn Kim’s age. His wife has no choice but to acknowledge the husband’s game mania for the sake of ‘family peace,’ as her husband does nothing to contribute to the household besides working.



Park, a 33-year-old housewife, has a daily routine of fighting with her husband over his online game obsession. "I’m upset whenever I see my husband playing computer games," Park said.


There are a growing number of husbands in their 30s and 40s obsessed with computer gaming. These men are more comfortable with being alone than being with their family. In their 20s, they started playing online network games such as The Sons of Dangun, before the Internet was born in the early 1990s, as well as the still-popular Starcraft and Lineage. This generation was also the one hardest hit by the 1997-98 Asian financial crisis, which experts say might have sought these men to seek some sort of stable community, thus contributing to the growth of this ‘cocoon tribe,’ as these men were forced to frequently switch jobs in the midst of the financial turmoil.


With their husbands hooked on computer games, the housewives are depressed due to their husbands’ lack of dialogue with themselves and their children.


Konkuk University professor Ha Ji-hyeon said, "A housewife’s general idea of rest is to further cultivate her relationship with her husband, but a husband generally wants to take a rest by himself in a cave." As the husband is under pressure from his authoritative company atmosphere and a family that is obsessed with the children’s education, the husband wants to have a ‘room of one’s own,’ according to Ha. "If a husband continually watches television programs at home, it may be a protective measure."


Ewha Womans University [sic] professor Ham In-hui said, "While a mother’s role is strengthened at home because of [the emphasis placed on children’s education], a father doesn’t have a new mission." Theoretically, a father wants to seek solace by himself. Some fathers ignore their families, while others devote themselves by sending money to their children studying overseas, according to Ham.

Friday, February 16, 2007

한글이름 영어 표기시 유의점


이번에 프리미어리그에 입단하는 이동국 선수가 기념촬영을 하는데 들고 있는 유니폼을 보니 영문이름을 "Dong Gook"으로 표기했더군요. 좀 당황스럽더군요. 영어 의미로는 정말 좋지 않은 단어들만 나열해 놓았거든요. 혹시 이동국 선수의 안티세력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한글이름을 영어로 옮기실 때는 혹시 그 단어가 영어로 안 좋은 의미가 아닌지 꼭 한번 보셔야 합니다.

일단 Gook이 제일 문제입니다. 오물, 때, 찌꺼기, 바보, 싼 물건 등의 뜻인데다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우리단어에서는 깜댕이, 쪽발이, 떼놈 등 특정 외국인이나 인종을 비하하는 표현에 해당하는 말) 영어사전에는 a very offensive word for someone from a county in the Far East. 라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Gook! 이라고 부른다면 한대 받아쳐도 될만한 수준의 단어입니다. Dong 역시 좋은 뜻이 아닙니다. 사전에는 taboo slang male sex organ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dong gook은 ‘거시기 큰 황인종’ 이라고 오해될 만한 이름을 축구선수가 자기 유니폼에 부착하고 경기에 출전하겠다는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동국’ 이라는 회사명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영어표기를 Dongkook 이나 Tongkook 등등으로 표시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여권에 영문이름 쓰실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한국이름을 영어로 옮기고 사전을 한번 찾아보시면서 유사한 발음의 단어가 없는지 한번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여권에 쓰인 영문 이름은 일단 한번 정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바꾸기 힘들다는 것도 유의하셔야 합니다. 참고로 영문이름을 쓸 때 우리식의 두자로 이루어진 이름에서 두 자를 떼어서 표기하는 경우에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홍길동을 Gil Dong Hong으로 표기하면 외국사람들은 100% Dong을 middle name 으로 인식하고, 가끔 Gil D. Hong 으로 마음대로 줄여버리는 일도 생깁니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Gildong 이라고 하던지 Gil-Dong 이라고 하이픈을 중간에 넣어버리는 게 안전합니다. 몇 가지 영어식 이름표기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름은 아니지만, 서울시에서 독립문을 Dog Rib Moon (개 갈비 달!!)로도 예전에 표기했다가 한번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았던 일이 있었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기아의 영문표기 KIA는 영어권에서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군에서 작전중 실종을 MIA(Missing In Action)라고 하고, (작전 중) 전사를 KIA(Killed In Action)이라고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품고 있어야 할 자동차회사의 상표로는 적당하지 않지요. 또 얼마 전에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인 제이 레노 쇼 보니까 미국 신문에 현지 한국 식당 광고가 나왔는데 아마 만두 전문집이었나 봅니다.

광고에서 만두를 “Man Doo”라고 표시했는데, 이걸 누가 돈 주고 사먹겠냐며 막 웃더군요. 왜냐하면 영어에서 Doo Doo는 우리식으로 하면 '응가' 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man doo는 '사람 똥' 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물론 한국사람들이야 알아듣고 오해없이 이해하겠지만, 외국인이 자국어로 어떻게 사용하고 부정적인 의미라면 이를 가능한 한 회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에 UN사무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신 반기문 장관의 경우에도 자신의 성을 Ban으로 표기하시던데, ban은 ‘금지하다’ ‘파문하다’ 심지어 ‘저주하다’ 라는 의미가 있어,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는 표기법입니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미국의 일부사이트에서 President No. 라고 표기했던 예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2007/02/05 국정브리핑

백넘버·노게임(?)

야구에서 백넘버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29년 미국 양키스 팀에 의해서다.

그 뒤 아메리칸리그는 31년에, 내셔널리그는 33년에 정식으로 백넘버를 사용하게 됐다. "박찬호가 백넘버 61번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엽이 자진해 25번 유니폼을 입고 미야자키 캠프에 들어갔다. 25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마크 맥과이어.배리 본즈 등 홈런왕의 백넘버로 유명하다" 등에서 보듯 운동선수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번호, 즉 백넘버가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러나 '백넘버'는 영어권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콩글리시다. 언중이 많이 쓰는 바람에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만 정확하게는 영어로 '유니폼 넘버(uniform number)'라고 해야 한다.

'백넘버'의 우리말 순화용어는 '등번호'다. '백넘버' 말고도 스포츠에서 많이 쓰이는 '노게임' 또한 콩글리시다. "

한국이 3-2로 이기고 있는 4회 말 상황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노게임이 선언됐다" "두산 선수들이 오랜만에 우천으로 인한 노게임 세리머니를 펼쳐 발길을 돌리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처럼 '노게임'이란 말이 흔히 사용되지만 영어에는 없는 말이다. '노게임' 대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경기가 무효가 됐다" 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 밖에도 '노'가 들어간 '노 타이틀' '노 세일' 역시 콩글리시다.

가랑비, 가랑


우리 국어에는 `비`와 관련된 단어가 유난히 많다.`가랑비`, `가을비`, `궂은비`, `꿀비`, `눈비`, `는개`, `단비`, `목비`, `못비`, `보슬비`, `줄비` 등 40여 단어를 헤아리니 가히 우리 민족은 `비`에 관심이 많았던 민족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이들 `비` 이름은 대체로 그 모양, 상태, 역할, 시기 등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명명의 관점이 분명하니 그 이름의 유래도 쉽게 드러난다. 빗줄기가 `실`〔絲〕과 같아서`실비`, 오랫동안 끄느름하게 내린다고 해서 `궂은비`, 필요할 때 알맞게 온다고 해서 `단비`, `이슬`과 같다고 해서 `이슬비`, `안개`와 같다고 해서 `안개비`이다.

그러면 `가랑비`는 어떤 비일까?`가늘게 내리는 비`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유래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가랑비`의 15세기 어형을 잘 분석해 보고 사용 예를 찬찬히 살펴보면 `가랑비`의 명명의 근거와 그 유래도 어렵지 않게 밝혀진다. `가랑비`는 15세기의 “月印釋譜”에 로 나온다. 이것은 `가랑`과 `비`〔雨〕로 분석된다.

`비`〔雨〕가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유성음화된 사실을 반영한 표기이다. 이에 따라 가랑비의 `비`가 ‘雨’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진 셈이다. 문제는 선행 요소 의 정체이다.혹자는 지금의 `가루`〔粉〕가 15세기에 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를 `가루와 같은 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가루`〔粉〕와 관련시킬 수 있는 비에는 `가랑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슬비`, `이슬비` 등과 같은 여타의 가느다란 비도 있기 때문이다.또 `가`를 `가랑`〔分〕의 어간 로 간주하여 를 `갈라진 비`로 해석하기도 하나 이 또한 믿을 수 없다. `비` 이름에 `가랑`〔分〕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랑비`를 `가랑`〔分〕과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실제 와 관계가 있는 `가랑머리`(두 가랑이로 땋은 머리), `가랑비녀`(머리에서 나란히 두 가랑이가 진 비녀), `가랑이`(원몸의 끝이 갈라져 나란히 벌어진 부분) 등의 `가랑`에 유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가랑`는 `안개`〔霧〕의 뜻이다. “杜詩諺解”(11:11)의 (老年花似霧中看)에 나오는 `가랑`이 바로 ‘霧’의 그것이다. “杜詩諺解” 초간본 속의 는 중간본에는 `안개`로 바뀌어 나온다.

이로써 가 `안개비`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리고 모양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가랑`이 `안개비`라는 사실은 지금 `가랑비`를 `안개비`라 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15세기의 는 17세기의 “譯語類解”(상:2)에 로 변하여 나온다. 의 `가랑`은 `가`에 접미사 ‘-앙’이 결합된 어형으로 파악된다. 이 는 18세기 이후 ‘가랑비’로 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랑비’에 대한 엉뚱한 어원 설이 나오게 된 것은, 그 어형이 많이 달라졌고 또 ‘霧’의 `가랑`이라는 단어가 ‘안개’라는 단어에 밀려나 일찍 사라졌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사면초가

진(秦)나라가 천하(天下:六國)를 통일한 뒤 진시황은 오만해져서 온갖 사치와 향락만을 즐기고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정치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살 수 없었으며 도적의 무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온 천하는 소란 속에 휩싸였다. 이때 유방(漢太祖)과 항우(項羽:楚覇王)는 서로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쳐서 항복 받았다.

그러나 유방과 항우는 진나라를 치는 데만 협력하였을 뿐 진나라가 망하자 곧 적이 되어 싸우기를 5년이나 하였다. 유방의 휘하에 있는 한(漢)나라 장수 한신(韓信)은 용병(用兵)에 능한 자로서 천하병마도원수(天下兵馬都元帥)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여러 제후국(諸侯國)의 장병들을 거느려 항우와 싸우는데 구리산(九里山) 전후좌우에 물샐틈 없이 장병들을 매복(埋伏)하고 초왕 항우를 사로잡으려 하였다.

항우는 그 힘이 능히 산이라도 뽑을 수 있는 역발산(力拔山) 만고용장(萬古勇將)으로서 한 사람이 열을 다할 수 있는 강동자제(강동자제) 8천명을 거느리고 한신이 매복한 포위망을 뚫기에 안간힘을 다하였다. 항우는 하루 동안에 한나라의 맹장(猛杖) 50여명과 대적하여 후퇴시켰으므로 한신은 쉽사리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역시, 한나라의 지장(智將)인 장량(張良)이 한신과 상의한 뒤에 계명산(鷄鳴山)에 올라가 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때는 늦은 가을, 서리는 차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고향 멀리 부모처자를 떠나와 전진(戰陣) 속에 파묻힌 강동자제(항우의 장졸)들은 찬바람 달빛 속에 고향을 그리던 중 간장이 녹을 듯 처량한 옥퉁소 소리를 들음에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복바쳐 오른다. 그들(江東子弟八千人)은 완전히 싸울 뜻을 잃고 한 사람 한 사람 진(진)을 벗어나와 도망쳐서 강동땅 그리운 고향을 달아나고 말았다.이때 한나라에서는 그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일부러 진문(陣門)을 열어 주었다. 이런 일이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항우는 그날밤에도 총희(寵姬) 우미인(虞美人)과 함께 장중(帳中)에서 자고 있다가 소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아, 이 소리는···."온 군중이 모두 초나라 노래(노래)를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초왕은 대경실색하며,"앗!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이 어이 초나라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은고,"하고 길게 탄식하였다.그 뒤 초패왕 항우(楚覇王項羽)는 간신히 한나라 진중에서 벗어나 도망치다가 강동을 건너갈 면목이 없다 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이로써 초나라는 망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고사를 인용하여 세상 사람들은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을 잘 쓰고 있는데 그 뜻은 `사방 팔방을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오직 적(敵)뿐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서 도와 줄 사람이 없이 고립(孤立)된 상황을 일컬어 `사면초가`라 한다.

( 徐京保, ≪古語, 格言과 傳設, 風俗≫ )

아닌 밤 중에 홍두깨

`느닷없는 일을 당했을 때` 쓰는 말이다.

옛날 여자들은 남편을 잃은 뒤에도 새로 시집 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남자들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는 축첩 제도를 인정하면서도 여자에게만 유독 정절을 강조했던 것이 유교사회의 대표적인 모순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여자들의 개가가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부터였다. 따라서 남편을 잃고 오랜 세월 동안 본능을 참아가며 수절을 하는 여자들은 더러 밤중에 누가 몰래 업어가길 바라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인습 속에서 남자의 성기를 홍두깨에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성기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말을 꺼리는 사회적 금기가 홍두깨라는 비유적 표현을 쓰게 하였다.

가던 날이 장날

생각 않던 일로 공교로이 일이 잘 들어맞거나, 틀어짐을 말함.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치르기 힘드는 일이 자주 닥쳐 옴을 이르는 말

한 줄의 미학, 영화 번역의 세계

한 줄의 미학, 영화 번역의 세계
[퍼온글]

우리가 외국 영화 속 주인공의 한마디에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은 화면 한 구석의 ‘자막’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제작된 영화라도 자막만 있다면 감상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자막을 만들어주는 영화 번역가는 고마운 존재다. 영화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배우 겸 영화 번역가인 조상구(본명 최재현, 53)씨를 만나보았다. 1988년부터 번역을 시작한 조상구씨는 ‘타이타닉’, ‘레옹’, ‘로미오와 줄리엣’,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수많은 외국 영화를 번역한 전문가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 번역은 영상 번역의 한 분야다. 영상 번역가는 외국에서 수입된 비디오물이나 영화 등을 우리말로 번역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직업을 총칭한다. 영화 번역은 다시 자막 번역과 더빙 번역으로 분류된다. 영상 번역 중, 조상구씨의 전문 분야인 영화 자막 번역을 중심으로 번역에 대해 알아보자.


번역의 과정

보통 영화가 상영되기 6개월 전에 번역 작업이 시작된다. 번역의 첫 과정은 영화사와의 연락으로 이루어진다. 영화사에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대본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영상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본으로만 먼저 번역을 한다. 이것이 가번역 작업이다. 가번역을 해서 영화사로 보내면, 영화사에서는 자체 심의를 거친 후 비디오테이프를 보내 준다. 그 후 번역가는 영화 속 캐릭터의 특징을 고려하며 본격적인 번역 작업을 한다. 번역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 한편을 번역하는데 보통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영화 한 편을 20, 30번 정도 반복해서 봅니다. 아무리 속도가 빠른 번역가라도 7, 8번은 봐야 해요. 그래야만 더욱 완벽한 번역을 할 수 있으니까요.”

번역 작업이 완성되면 자막실에서 영화 필름에 자막을 넣는다. 자막 한 줄이 화면에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넘버링’이라고 말하는데, 영화 한 편에 넘버링이 평균 1200~1700개 정도 들어간다. 길이가 긴 영화는 넘버링 2400, 짧은 영화는 넘버링 700정도다. 자막 작업까지 끝마치면 영화사 사람들과 함께 자체 시사회를 한다. 그 후 영화의 홍보 방향을 정하면서 전체적인 틀을 잡아간다. 세부적으로 자막을 좀 더 순화한다거나, 캐릭터를 더욱 뚜렷하게 나타내는 방법 등의 의논을 한다.


관객 편에서 생각하기

조상구씨는 작업을 할 때 관객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쉽고 가장 빠르게 전달 받을 수·있을지를 우선으로 한다. 관객에게 쉽고 빠르게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막을 읽는 동시에 화면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까지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와 달리 외국 영화는 귀로는 외국어를 듣고 눈으로는 우리말로 된 자막을 보기 때문에 두 가지 행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외국 배우가 마치 우리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돼요. 영화 보는 내내 자막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되죠.”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특히 외국 속담이나 인용구 번역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상구씨는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언어는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해요. 번역은 외국어와 한국어, 나아가서 외국 문화와 우리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직역 혹은 의역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말의 원래 의미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우리 정서에 맞도록 조절한 것이 잘된 번역이다.
외국어보다는 우리말

영화 번역가에게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말부터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상구씨는 번역가들이 영화를 번역할 때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는 우리말 실력의 한계라고 말한다.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맞추어 넣지 못하면 번역의 맛이 안 살아요. 저는 영어사전보다 고어사전, 방언사전 등의 우리말 사전을 더 많이 사용하죠.”

영화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그만의 노하우가 있단다. 조상구씨는 ‘ㄴ,ㅁ,ㅇ’의 받침을 사용해서 부드럽고 선한 캐릭터를 더욱 강조한다. 반대로 악역이나 드센 캐릭터의 경우에는 ‘ㄱ,ㅋ,ㄲ’가 들어간 단어들을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세상에 찌든 형사가 거친 목소리로 차 한잔하자는 권유를 할 때,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보다 “우리 커피 한 잔 때릴까?” 라고 번역하는 식이다. 또한, 낱말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조사와 감성을 자극하는 형용사를 풍부하게 사용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내용에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영화 번역가가 되려면?

영화 번역가가 되기 위한 공식적인 시험이나 자격증은 없다. 아직은 선배나 아는 사람의 인맥을 통해서 일을 조금씩 익혀나가야 하는 것이어서 경쟁이 치열하다. “철저한 자신만의 노하우 없이는 뛰어들 수 없는 직업이라 초보자들은 일을 얻기 힘들어요.” 외국어에 능숙하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막을 찍어내는 자막실과의 의사소통 능력, 관객들의 다양한 눈높이를 맞추는 요령 등을 터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영화 번역가들은 7~8명 정도다. 올해로 경력 18년 차인 조상구씨의 수입은 영화 한 편당 200만원이다. 전문적으로 번역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자들은 보통 한 작품 당 30만원부터 시작한다.

“작업을 하려고 비디오테이프를 받고 집에 올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새로운 영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본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조상구씨는 영화 번역가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자세라고 당부했다. 하루에 같은 영화를 10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영화 번역가가 되기 위한 기본기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바꿔주는 영화 번역가야말로 언어의 마술사가 아닐까.

한국어가 있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도와주는 <한국어가 있다> 제1권. 2003년 3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약 2년간 중앙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우리말 바루기'를 엮은 책이다. 기존의 문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실생활과 관계된 것을 위주로 우리말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서 잘못 알고 있거나 헷갈리기 쉬운 것들을 골라 살펴보고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외국어, 생활 속에 파고든 일본말이나 일본식 한자어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살아 있는 예문을 제시하며 우리말과 글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어표현연구


국어의 표현을 연구한 책. 저자가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대학생들의 언어 실태와 일반인들의 언어 실태, 초등학생들의 언어 실태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북한의 성경과 찬송가에 대한 국어학적 연구도 함께 수록하였다.

영화 제목,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영화 제목,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몇해 전에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 그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 영어사전을 뒤져 보았는데, 아무 곳에서도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영어를 잘 하는 친지에게 물어보니 ‘밀착 취재’라는 뜻의 미국 속어라고 말해 주었다. 요즘 상영되는 외국 영화들 중에는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최근 것만 보아도 ‘딥 블루 시’,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 센스’ 같은 제목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Deep Blue Sea’, ‘The Usual Suspect’, ‘The Six Sense’가 원제로, 각각 ‘짙푸른 바다’, ‘상습 혐의자’, ‘육감(六感)’이라는 뜻을 지닌 말들인데, 영어 제목을 번역도 하지 않고 우리말로 옮겨 적어 놓기만 한 경우이다. 심지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sy)’,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데드맨 워킹(Deadman Walking)’처럼 제목 전체가 하나의 문장인 것조차도 외국어를 통째로 옮겨 적는 일이 적지 않다.

이와 다른 경우로 이름을 잘 지어 영화의 내용을 얼른 알 수 있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매우 간단한 번역이지만,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제목들이 그렇다. 앞의 예들처럼 이 영화들을 원제 그대로 ‘리빙 라스베이거스(Leaving Las Vagas)’, ‘세이빙 프라이빗 라이언(Saving Private Ryan)’이라고 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간단한 수고를 들여 번역을 한 것이 매우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이 돋보이는 것은 외국 영화 가운데 이 정도로 잘 번역된 제목들이 흔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외국 영화 제목을 우리말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 이상의 작업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나라마다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구(字句)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해서는 좋은 제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콘에어’란 영화가 있다. 무슨 말일까? 비행기 안에서 주는 팝콘? 원제는 ‘Con Air’로 ‘죄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Convicted’의 속어인 ‘Con’과 ‘Airplane’을 줄인 ‘Air’를 조합해 만든, ‘죄수 호송기’를 뜻하는 속어이다. 이것을 그저 ‘콘에어’라고 옮겨 놓으면 아무리 영화와 영어에 관심이 많은 관객일지라도 그 뜻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의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왜그 더 도그(Wag The Dog-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뜻의 본말전도를 말함)’나 ‘콘 에어’를 무리하게 ‘본말전도’나 ‘죄수 호송기’로 번역하려고만 할 필요는 없다.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외국 영화를 영화 내용에 맞춰 국내에서 새로 작명하여 성공한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The Ghost’란 영화를 ‘유령’ 또는 ‘귀신’이라고 이름 짓는 대신 ‘사랑과 영혼’이라고 한 것이 좋은 예다.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라고 하지 않고 ‘애수(哀愁)’, ‘세 번째 남자(The Third Man)’ 대신 ‘제3의 사나이’라고 한 것도 훌륭한 번역이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정성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영화라 하더라도 우리말, 우리 문화를 배려한 좋은 제목들을 찾는 데 정성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케빈은 12살(The Wonder Years)’, ‘나 홀로 집에(Home Alone)’,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 Clyde)’,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The Arpartment)’,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As Good As It Gets)’ 등처럼 적절한 우리말 제목을 찾는 일에 정성을 다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더 오래 기억되는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말글 정책의 올바른 방향

말글 정책의 올바른 방향-특정 학맥이 뒤흔드는 말글 정책, 국어 연구원을 개편하자-
김 영환
한글철학연구소 소장, 부경대 교수


문화관광부와 국어 연구원은 지난 10월에 국어 발전 종합 계획을 내놓으며 국어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보도 매체에 공개된 8대 중점 추진 과제를 보면, 대부분 오래 전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고전적인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넘쳐나는 외국어 문제를 고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늘날 국어 발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빠져 있다. 또 중국 글자를 섞어 쓰겠다는 뜻이 곳곳에 드러난다. 새로운 내용이 있다면 국립 국어 연구원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국립 국어 연구원은 그 조직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방식이 국어학계의 일부 학맥이 좌우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계획의 기본 정신이 문제다. 해방 후 우리 말글 정책의 근본이라는 한글로만 쓰기를 부정하고 있다. "표준 한자 사전 편찬, 상용 한자 제정" 등의 표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글로만 쓰기는 중화 사상의 독소를 빼내고 한자(중국) 문화권에서 벗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다. 이를 전제하지 않는 국어 연구와 국어 교육은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다. 철저한 한글 전용은 국어 정책의 기본이다.

또 이 법안에 대해 걱정되는 것은 우리 말글의 위협 요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말을 배울 필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데서 온다. 지난날 한문이 신분 상승의 매개물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미국말이 직장에서 능력의 기준이 된다. 각종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서 미국말이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해도 좋은가. 사법 시험 같은 곳에서는 미국말은 거의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각종 국가 시험부터 막연한 통념으로 미국말을 배울 필요를 부풀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공공연하게 나온 미국말 공용화 논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세계화"로 나타나는 미국의 패권에 순응하자는 이데올로기가 언어 방면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초등학교에서의 미국말 교육이 시작된 것도 "세계화"가 정치 구호가 되던 무렵이었다. 이제는 유치원 꼬마들까지도 미국말을 배우고 있다. 조기 유학을 하는 이유도 미국말이 큰 까닭이 된다.

지난날의 한문 숭배는 이제는 어김없이 미국말 숭배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애초에 초등학교에까지 미국말 교육을 해야 한다는 필요를 누구나 절실히 느낀 것은 아니었다. "세계화"라는 뜻 모를 말이 주문처럼 돌아다니자 모두가 아는 체해야만 했다. 제대로 된 정책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식의 통념이 선전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필요성에 의존한다. 외국어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필요한 분야에서 배우면 된다. 이 필요성은 시기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정확하게 재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이를 교육한다는 것은 우리 겨레 모두가 미국말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으므로 이는 지나친 생각이다. 미국말 배우기가 얼마나 필요한가란 물음에 대한 생각을 해 보지도 않고 온 겨레가 미국말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줄이는 데에는 학문에서 번역의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번역 작업을 총괄하고 지원할 국립 번역원을 세우는 것이 좋다. 번역 무른모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립 번역원이란 기구를 세우는 것이 짐이 된다면, 이미 있는 국립 국어 연구원을 번역원으로 개편하는 것이 좋다.

이런 논의도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사실 이제까지 국어 연구원의 운영을 두고 말이 많았다. 서울대라는 두터운 학맥 때문에 아직도 매체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지만, 그 탄생부터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20년 전 군사 정권 시절에 이 희승을 비롯한 한자 혼용파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만든 것으로, 아직도 '서울대 출신의 독무대'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국립 국어 연구원에 대한 불신은 국어 연구원이 생길 때부터 나타났던 것이다.<주1> 이러한 불신을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나 이 희승과 함께 어문 교육 연구회를 이끌었던 남 광우는 '편파적이 되지 않도록 운영을 도모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주2> 지난 1999년 2월에 권력을 등에 업고 한자 혼용 소동을 벌인 것도 이런 탄생의 비밀을 안다면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사실 국어 연구원은 일본을 모범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그 출발부터 주 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을 부정하고 이와 대결하려는 것이었다. 이 기구는 특정 학맥이 패거리를 지어 관료를 등을 업고 경성제대에서 배운 주장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패권을 유지하는 도구이다. 통일을 대비하는 사전을 만들겠다고 떠들며 출발했으나, 정치적 동기로 계획을 여러 번 변경하였다. 이렇게 나온《표준 국어 대사전》은 이제 폐기 여론이 거세다. 1994년 10월의 문화 인물이었던 이 희승 미화 왜곡 작업, 동양 삼국의 한자체 통일 작업 등 적잖은 말썽을 부렸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시안을 보면,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특별 추진 과제로 '국어 연구원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조직 확대 및 권한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국립 번역원이지 국어 연구원이 아니다. 이런 국가 기구는 또한 학문 연구에서 국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여 많은 연구자들을 자리나 넘보고 정부의 눈치나 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또 그것이 그냥 국어 연구가 아니라 말글살이를 직접 규제한다는 점에서 국가 개입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나라 없던 시기에 민간이 스스로 맞춤법의 틀을 마련한 값진 전통이 있다. 국어 연구원은 겉보기에는 '유일한 국립 연구 기관'이다. 학문 연구 조직에 '국립'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학문 연구의 관료화 및 국가화는 결국 자유로운 연구를 옥죄게 된다. 국립 연구원은 필요한 관료 기구가 아니다. 국어가 발전하려면 이런 불신 받는 국가 기관부터 정리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공무원 시험에 국어 인증 시험을 부과하는 정도는 바람직하다. 정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정부 기관에서 고치고 다듬을 말을 불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마저 있다.
이미 40년 전 5월 군사 정변 뒤에 이런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산업자원부 같은 데서는 영어로 회의를 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 기구가 그냥 구색만 갖추고 실질적 기능이 없는 기구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런 현실로 미루어 보면, 좀 더디더라도 민간의 자율적 운동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국어 정책이 바람직하다. 규제와 처벌 중심보다는 우리 말글 사랑을 북돋는 쪽이라야 한다.

더구나 국어 연구원에 설치하겠다는 표준어 사정 위원회에서 새말을 사정한다는 데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경성제대에 수입된 '과학적' 언어학을 아직도 그대로 읊조리는 국어 연구원은 언어의 자연성을 내세워 새말은 애짓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서 있으며, 이는 사실상 우리 말글 사랑을 '이념적, 인위적'인 것으로 배척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토박이말로 새말을 짓는 데에 공공연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또 이런 관점에 따라 북녘의 언어 정책을 대결과 냉전이라는 관점에서 여론을 왜곡해 왔다. 북녘의 한글만 쓰기 정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깨치지 못하고 냉전적 대결 의식에 사로잡혀, 한문 교육을 하는 것을 "한자 폐지가 가져다주는 폐단을 그들이 일찍이 체감"<주3>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관점은 북녘에서 나온 사전에 대한 분석이나 우리말에서 나타나는 새말에 대한 비평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식 한자말과 미국말에 오염된 남녘말은 돌아보지 않고, 이른바 '언어 이질화'를 북녘의 말다듬기 탓으로 돌렸다.

"다듬은 말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언어 순화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주4>

그러나 말다듬기는 한글로만 쓰기의 한 부분이다. 국어 연구원은 언어의 자연성이란 관점에서 우리말의 새말이 만들어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평하고 있다.《2001년 신어》에서 "떴다방, 묻지마 투자, 야타족, 나홀로족, 깜짝쇼" 등이 어법에 맞지 않거나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새말 만들기가 '어법'에 어긋난다고 반드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법'이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지나치게 규범적으로 현상을 보는 '어법'이 문제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도 매우 주관적이다. 멀리는 "날틀"로 대표되는 새말에 대한 거부감은 한자 숭배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경성 제대의 '전통'을 고집하는 국어 연구원이 '남북 언어 교류를 활성화'할 수는 없다.

2000년 8월에 허 웅 님과 류 렬 님의 만남을 계기로 남쪽의 잡탕말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국어 연구원장은 우리 말글 사랑 운동을 '자존심만 내세워 무조건 외래 요소를 배격하려는 자세'라고 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고유성과 외래 요소를 융합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의 한글 전용이 '언어 이질화'의 원인이라 생각한다(《조선일보》2000. 8. 23.).

국어 연구원은 우리 역사와 말글을 보는 관점이 주 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이 살아 있는 북쪽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어 연구원이 '교류 활성화'나 '공동 연구 협의회 구성'에 나서더라도 결과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종합 국어 대사전'을 편찬한다며 북쪽과 만나자고 한 결과를 국어 연구원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제국 대학의 낡은 유물로 남북 대결과 분열의 길을 갈 수는 없다. 국립 국어 연구원을 시민 단체(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가 지난 1999년과 2001년에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말글살이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정책이 나와야 한다. 미국말 숭배와 우리말 천대라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을 말글 정책의 본질은 외면하면서, 불신 받는 국가 기관이 한 가닥 뉘우치는 빛도 없이 언론이 침묵하는 틈을 타서 스스로의 권한을 강화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일에 골몰한다면 큰 반발을 부를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국민의 동의 없이 법규에 따른 말글살이 규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일으킬 활발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
<주1>《한글 새소식》제132호(1983. 8.)에 나타난 김 영철 님의 글.
<주2>〈국립 국어 연구원 설치 제안의 이유를 밝힌다〉, 어문 연구, 1983. 9.
<주3>《북한의 언어 정책》(1992. 7.), 170쪽.
<주4>《북한의 국어 사전 분석 3》(1994. 12.)·《북한의 국어 사전 분석 4》(1996. 12.)의 머리말.

“외래·번역문투, 우리글 뼈대까지 흔든다”

[한겨례 신문에서 퍼온글]

법률문장 등 일본어투 사회영향 크고 영어번역투 어색한 문장 갈수록 남발 ‘문체 바로잡기·순화 운동’ 필요성 제기

한겨레말글연구소 학술발표회


우리 말글에 외래·번역문투가 낱말 차원을 넘어서 문법 요소와 문장 틀마저 헝클 정도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런 진단은 6일 ‘우리글에 스민 외래·번역문투’라는 주제로 열린 한겨레말글연구소 제2회 학술발표회에서 나온 것으로, △‘법률·실용문에 나타난 일본어 문투’(발표자 박갑수) △‘영어교육 영향과 영어 번역문투’(〃 이근희) △‘외래·번역문투 손질하기’(〃 최인호) △‘고종 국문쓰기 칙령의 국어사적 의미’(〃 김슬옹) 등 소주제 발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그 원인과 처방, 번역문투를 다루는 태도에서는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견해가 엇갈리기도 했다. 이는 이 분야의 전면적인 연구·검토 뒤 엄정하게 짚어야 할 문제임을 보여준다.


본디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뒤치는 일이 번역이다. 우리말에서 번역의 역사를 살피면, 그 역사가 훈민정음 창제와 같이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들고서 딸 정혜공주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그 쓰임새를 시험하게 한 것이 이른바 한문으로 된 불경의 언해, 곧 불경을 번역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석가모니 연대기를 짓는 일이었다. ‘용비어천가’ 역시 온전히 조선식 글이라고 하기 어렵다. 즐겨 읽던 ‘두시언해’도 잘 뒤친 번역시였다. 이처럼 한문번역 역사는 훈민정음의 역사만큼이나 길며, 우리 문장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밑절미가 된다.
우리 산문이 한문 문체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말차례, 낱말, 말투를 간직하며 내려왔으나 한문투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판소리를 비롯한 옛소설들에 스민 숱한 한문투들이 증명해준다.


우리 말글에 스민 일본어, 영어 문투=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갑수 교수(서울대)는 광복 이후에 만든 온갖 법률이 일본 것을 베끼거나 일제 때 것을 토씨 정도만 손질한 채 그대로 썼기에 나중에 새로 나온 법들마저 일본어 문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사실 민사소송법은 박갑수 교수가 다듬어 개정한 바 있다.


법률 문장은 일반 용어에도 영향을 주어 그 폐단이 적지 않다. 곧, 법률 문장은 온갖 행정문·실용문 등에 인용돼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까닭이다. 박 교수는 낱말 차원을 제외하고, ‘~대하여’와 ‘~의’의 남용과 같은 잘못된 일본어 문투 사례로 40여 가지를 들었다.


이근희 교수(세종대)는 ‘영어교육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라는 발표문을 통해 과도한 영어학습과 잘못된 영어교육 탓에 번역투가 양산되고 있음을 짚었다. 일반적인 번역문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번역 숙제 가운데 전형적인 것을 토대로 50여 가지 보기를 들어 그 대안을 짚었다. 특히 뜻이 다양하게 쓰이는 영어 동사들을 우리말과 일대일 대응으로 번역함으로써 차원 낮은 번역문투가 양산됨을 번역학 차원에서 꼬집었다. ‘go’를 ‘가다’로, ‘make’를 ‘만들다’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면서 어색한 문장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영어의 시제, 전치사, 수, 피동문, 말차례 따위에서 연유한 번역문투들을 짚었다.


이런 현실 아래 최인호 한겨레말글연구소장은 ‘외래·번역문투 손질하기’라는 발표문에서 보도문에서 두드러지게 쓰이는 ‘~에 의하면/~에 따르면, ~에 대해/~에 관해, ~에 의해, ~에 비해, ~을(를) 위해/~을 위하여’가 들어간 문장을 비롯하여 30가지를 추려 다듬은 글을 선보였다. 이는 한문투와 일본어 문투, 영어 문투가 뒤섞여 굳어져 쓰이는 보기들로서 이 정도만 손질해도 일상적인 보도문투에서 거슬리는 번역문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박 교수는 외국어란 크게 보았을 때 ‘필요해서 차용하는 것과 위세에 밀려 차용한 것’으로 나누면서, 낱말이든 문법·문체든 위세적 동기로 스민 것은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봤다. 선별적 수용론을 주장한 것이다.


필요적 차용에 대해 토론에 나선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씨는 단호한 순화를 주장했다. 국어교육자들이 이 분야를 좀더 공부할 것과 제대로 된 국어교육을 주문했다. 그는 특히 “변화에 순응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외국어 단어를 남용해 우리말을 죽이거나 서투르게 번역한 문투로 글을 써서 한국인다운 사고체계를 무너뜨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하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우리말에 끼치는 영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라는 말도 나왔다. 토론에 나선 한학성 교수(경희대)는 학자들이 어색한 번역 또는 직역투 문장을 남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른바 ‘보도 기능’(소개 학문) 위주로 학문을 일삼는 학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봤다. 특히 그는 이를 극복하자면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고 영어교육 방식도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곧,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독자적인 영어교육 쪽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새로웠다.


최 소장은 “번역한 글이야 한수 접어서 이해하며 읽으면 되지만 번역과 상관이 없는 우리글에 스며든 번역문투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한문-일본어-영어가 서로 얽혀 보도문에 스민 번역문투 사례들을 내보인 뒤, 사람들이 익숙해진 바가 많지만 여전히 우리글 속에서는 물에 기름처럼 떠돌고 있으므로 대대적인 문체 바로잡기(또는 문체반정) 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토론에 나선 정상훈 교사(과천외고)는 지나친 관용어 손질이 주는 거부감, 자연스런 변화에 무게를 실었다.


한편, 이날 김슬옹 교수는 ‘고종의 국문 쓰기 칙령’의 영향과 19세기 말의 국어정책에 따른 국어사용 현실을 짚었다.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오류 많다”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오류 많다”
[한겨레 신문에서 퍼온 글]

●“…지혜의 신 팔라스를 낳는다” → 팔라스는 지혜의 신이 아님● “크레테왕 미노스 2세와 파시에파의 아들 리비코스” → 리비코스가 아닌 글라우코스● “트로이 전쟁에 목마를 만든것도 아테나이 사람” → 아테나이 사람이 아니라 에페이오스 사람들
‘이윤기씨 신화 전문가 맞아?’


이재호(70)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최근의 저서 <문화의 오역>(동인 펴냄)을 통해 던지는 의문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이윤기씨의 <그리스로마 신화>(전3권)를 비롯한 5권의 저서와 <변신 이야기>, <장미의 이름>(개역판) 등 번역서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옥스퍼드 그리스로마 문학사전>, <그리스 신화사전> 등의 전거를 대며 조목조목 밝혀낸 이씨의 오류는 이 교수의 표현처럼 ‘문화의 오역’이라 할 만하다. 오류가 많고 중대하기도 하려니와 그의 책이 많이 팔린 까닭이다.
이재호 교수 ‘문화의 오역’ 잘못된 번역 조목조목 지적


가장 많이 발견되는 오류는 아이러닉하게도 신의 이름이다. <그리스로마신화-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를 살펴보자.


이윤기씨는 에로스와 에리스를 혼동하여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나른한 그리움의 여신 히메로스와 함께 늘 아프로디테 주위를 서성거”린다(95쪽)고 기술하고 있다. 그의 혼동은 “제우스에게 탄원하는 여신 테튀스”(216쪽)에도 이어지는데, 정확한 것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요정’ 테티스이다. 그가 혼동한 테튀스는 여자 티탄으로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이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사이에 서 있는 프톨레마이오스”(213쪽)에서 그는 트립톨레모스를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와 헷갈리고 있다.


“호라이 3자매 중 봄의 여신인 맏이의 이름은 탈로, 즉 꽃피우는 여신이라는 뜻이다”(91쪽)에서 이씨는 삼미신 중 하나인 탈레이아와 혼동하고 있다. 또 크레테왕 미노스 2세와 파시에파의 아들은 글라우코스인데도 리비코스라는 엉뚱한 이름을 대고 있으며(277쪽), 헤카톤케이레스의 3형제 중 막내의 이름을 귀게스가 아닌 기에스라고 적고 있다.


이밖에 “크리오스는 별들의 신 아스트리아토스와 지혜의 신 팔라스를 낳는다”(57쪽, 아스트리아토스→아스트라이오스, 팔라스는 지혜의 신이 아님), “무사이 9자매의 맏이 클레이오는 영웅시와 서사시를 담당한다”(222쪽, 클레이오는 역사의 시를 담당하는 신임), “아테네에 있는 바람의 집/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에게/아들이 여럿 있다. 서풍의 신/페퓌로스, 남풍의 신 노토스/북풍의 신 보레아스가 바로 이들이다”(246쪽, 여럿→여섯. 예로 든 셋은 아이올로스의 아들이 아님) 등도 신의 이름이 틀린 경우다.


사실과 다르게 기술한 것도 지적됐다. “트로이 전쟁 때 목마를 만든 것도 아테나이 사람”(6쪽)이라고 했으나 실은 에페이오스 사람들이다. 그는 또 “미노스왕은 아테나이왕을 협박해 해마다 12명의 선남선녀를 바치게 했다”(7쪽)지만 12명이 아니라 14명이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찾아가 아마 실타래를 건네주었다”(8쪽)는데, 그의 다른 번역서 <변신이야기>에서는 ‘명주 실타래’라고 적고 있다. “헤르메스는 대장장이를 불러 창으로 제우스의 두개골을 조금씩 까내게 했다”(96쪽)에서는 창이 아닌 도끼가 맞다. “시쉬포스는 저승 왕을 속인 죄로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했다”(237쪽)에서도 시쉬포스가 저승왕 하데스를 속인 게 아니라 타나토스(죽음의 신)를 속여 결박한 것이다.


땅 이름이 틀린 경우는 애교스럽다. ‘오트뤼스산’을 ‘오르튀스산’(68쪽)으로, ‘템페골짜기’를 ‘캄페골짜기’(71쪽)라고 적었다.

그리스어에 서툴러 표기가 틀린 사례(미노스왕국→미노아왕국, 기가시들→기간테스들, 아가우에→아가베로, 레르네→레르나) 외에 번역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왕비와 여왕의 뜻을 가진 queen은 무조건 여왕으로 번역하기)도 지적됐다.
대학에서 20년 이상 그리스 신화를 가르친 이 교수는 “이씨의 번역과 신화 해석은 엉터리”라며 “많이 팔린 만큼 그 피해도 커서 거의 공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읽어봅시다


우리 문화 곳곳에서 보여지는 문화오역의 예를 들며 바로잡는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을 문화오역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펜을 들었다고 밝히며, 좋은 번역을 하려면 번역 대상인 문화에 관해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1부는 문화오역의 개념과 문학작품.,영화.음악.연극.미술 분야에서 오역된 제목들을 바로잡는다.


2부는 저자가 '문화 오역의 대가'라고 표현한 이윤기씨의 번역서를 다룬다.

읽어봅시다


재미있고 통쾌하지만 비정상적 영어열풍의 허무함을 뒤돌아보게 하는 영어문화 비평서이다. 『한국영어를 고발한다』는 단순히 콩글리시를 찾아내고 그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당연히 정확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정부나 기업의 영어 표현이 잘못돼 있음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영어 열풍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의 영어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일깨워준다.
필자는 우리사회에 퍼져 있는 영어표현의 오류를 치밀한 설명과 함께 날카롭게 분석해서 사회적 각성을 촉구하고 한국의 영어문화와 글로벌 마케팅 활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콩글리시로 얼룩진 한국의 글로벌 마케팅의 치명적인 오류를 분석해 명쾌한 대안을 제시한 책.

틀리기 쉬운 우리말

  • 있슴 -> 있음
  • 곤색 -> 감색, 검남색, 진남색
  • 고마와요 -> 고마워요
  • 왠 일 -> 웬 일
  • 웬지 -> 왠지
  • 안 되 -> 안 돼 (띄어쓰기에도 유의)
  • 안됀다 -> 안된다
  • 몇일 -> 며칠
  • 아니예요 -> 아니에요, 아녜요
  • 한 살박이 -> 한 살배기
  • 알맞는 -> 알맞은
  • 들려서 -> 들러서
  • 갈께 -> 갈게
  • 숫가락 -> 숟가락
  • 아뭏든 -> 아무튼
  •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삼가 주십시오
  • 예/아니오 -> 예/아니요
  • 김치를 담궈먹다 -> 김치를 담가먹다
  • 곱배기 -> 곱빼기
  • 보여지다 -> 보이다
  • 불리우다 -> 불리다
  • 이래 뵈도 -> 이래 봬도
  • 치뤘다 -> 치렀다
  • 홍길동씨 -> 홍길동 씨 (띄어쓰기)
  • 햇님 -> 해님
  • 푸르른 -> 푸른
  • 푸르름 -> 푸름
  • 일찌기 -> 일찍이
  • 외곬수 -> 외골수
  • 외골수로 -> 외곬으로
  • 복숭아뼈 -> 복사뼈
  • 멋장이 -> 멋쟁이
  • 대장쟁이 -> 대장장이
  • 어떻해 -> 어떡해
  • 할거야 -> 할 거야 (띄어쓰기)
  • 맨날 -> 만날